서울대 등 6개 대학이 과정 개설…
이수 기간 다양하고 야간ㆍ주말과정도 운영
올해부터 국내 대학에도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경영학석사) 과정이 본격 개설된다. 기존의 경영학 석사 과정이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원의 개념이었다면 MBA는 경영과 관련된 ‘실무’를 실질적인 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수학점이 기존 경영학석사 과정의 두 배 수준인 45학점 이상이란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 관계자는 “실무 과정 위주의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최소 45학점 이상 이수하는 한편 영어 강의의 비중을 높일 것을 (MBA 인가 과정에서) 권고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지금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을 비롯한 몇몇 대학이 MBA 과정을 운영해 왔지만 오는 9월부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6개 사립대학이 MBA 과정을 신설함으로써 각 대학이 본격적인 MBA 경쟁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번에 MBA 과정을 개설하는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이화여대 이상 6개 대학이다. 기존에 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까지 합치면 모두 11개 대학이 MBA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각 대학마다 신설하는 MBA 과정에 큰 기대를 보이고 있다. 안상형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지난 5월 8일 가진 서울대 MBA 출범 행사에서 “서울대 MBA를 10년 내에 세계 10위권 진입과 동시에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며 “국내 인재들이 비싼 돈을 들여 해외 MBA로 유학을 가고 있지만 앞으로 서울대 MBA가 이를 대체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화여대는 지난 6월 7일 있었던 이화 MBA 출범행사에서 서윤석 경영전문대학원장이 모교 출신인 현대 현정은 회장에게 ‘21세기 여성 CEO상’을 수상하며 “현 회장을 있게 한 여성 리더십을 이화 MBA 학생들에게 집중 보강시켜 제2, 제3의 현정은 회장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MBA는 과정별로 이수 기간이 다를 뿐 아니라 전일제 외에도 야간, 주말 등을 이용한 과정이 개설되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미국의 경우 전일제 2년 과정이, 유럽은 1년 과정이 주를 이룬다. 서울대에서 올해부터 시작하는 ‘글로벌 MBA’는 1년 과정으로 이뤄졌지만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한 ‘Executive MBA’ 과정은 2년 동안 주말을 이용해 운영할 계획이다. 서강대는 전업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 MBA’는 1년 6개월,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야간 MBA’ 과정은 2년 6개월, 기업체 과장·차장 이상 중견간부를 대상으로 한 ‘E-MBA’ 과정은 2년을 이수 기간으로 하고 있다.
이수 기간이 짧다고 해서 반드시 학비가 싼 것은 아니다. 최소 45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학위를 딸 경우 학기를 세분화해 더 밀도있게 운영된다. 예를 들어 1년 과정의 서울대 글로벌 MBA는 매 학기당 8주, 방학 없이 총 5학기로 구성돼 있다. 과정별로 이수하기까지 들어가는 총 학비는 대개 2500만~4500만원 수준이다. 복수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해외에서 공부하는 경우엔 별도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국내 일반 대학원보다는 비싸지만 보통 1억원 이상이 드는 해외 MBA와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올해 한꺼번에 다수의 MBA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학생 유치경쟁을 해야 하는 각 대학은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외국의 명문 대학과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는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 미국 듀크대학과 공동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학위 취득을 원하는 학생은 서울대에서 3학기(1학기당 8주) 동안 필수 과정을 이수하고 이후 1년 2개월 동안 미국 듀크대에서 나머지 과정을 이수한다. 단 이를 위해서는 듀크대의 입학 기준을 충족시키는 지맷(G-MAT)과 토플(TOEFL) 점수를 획득하고 별도의 입학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연세대는 미국 퍼듀대학과 협력관계를 체결하고 퍼듀대학의 교수가 연세대를 방문하여 직접 강의 및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또 해외 유수 대학에서의 교환학생 기회를 제공한다. 고려대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등과 전 과정에 걸쳐 공동학위제를 추진하고 있다. 서강대도 현재 1년 6개월 과정인 전일제 주간MBA 과정에 대해 앞으로 1년은 서강대에서, 나머지 1년은 해외 대학에서 학위를 수료하는 복수 학위프로그램을 추진 중에 있다. 이화여대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프랑스 이에섹 경영대학원에서 복수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협력을 체결했다.
특정 분야를 특화해 차별화를 꾀하기도 한다. 고려대는 금융 분야의 MBA 과정을 특화해 이 분야에 대해선 100% 영어로 강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양대는 올해에는 일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야간 MBA 과정만 운영하지만 내년부터 개설되는 주간 MBA 과정은 공학적인 배경지식 습득에 초점을 둔 디지털경영 과정과 금융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MBA 과정으로 특화시킬 예정이다.
서울대를 위시한 주요 사립대학들이 MBA 과정을 개설하자 기존에 MBA 과정을 운영해 온 대학들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일단 이들 대학은 주요 대학의 MBA 시장 진출이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96년 국내 최초로 MBA 과정을 개설한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의 관계자는 “다른 대학과 경쟁해야 한다는 측면보다는 전반적인 국내 MBA 시장을 확대하고 활성화시키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 경영대학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선정한 올해 전 세계 MBA 순위평가에 국내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응시해 102위에 올랐다. 이 대학 관계자는 “비영어권 대학으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순위에 든 만큼, 한국의 대표 MBA 대학원으로서 위상을 확립한 셈”이라고 말했다.
1997년 12월 교육부로부터 MBA 인가를 받아 이듬해부터 MBA 과정을 운영해 온 성균관대는 3년 전부터는 미국 MIT대 슬로안스쿨과 연계한 공동 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성균관대는 지난 4월 교육부의 제2단계 BK21 사업 ‘고급 전문 서비스 인력양성 사업 MBA’ 분야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 함께 선정돼 향후 7년간 매년 10억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2001년부터 미국 시러큐스대학과 연계해 세종-시러큐스 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세종대는 올해부터 시러큐스대 소속 교수의 강의를 한 해 8과목으로 늘렸다. 처음부터 외국의 명문대학과 연계해 홍보에 주력한 결과 현재 전체 재학생의 약 40%인 110명이 외국학생으로 채워졌다.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학과 이수일 주임은 “시러큐스대학 교수를 초빙하는 등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은 MBA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며 “국내에서 대학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MBA 시장에선 선발자로서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대학이 야심차게 MBA 과정을 내놓고 있지만 과연 해외에서 MBA 학위를 따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국내 MBA가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한때는 해외 MBA 졸업장이 고액 연봉의 보증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수요와 공급의 비율이 역전돼 기업이 MBA 출신을 맘대로 고르는 실정이다. 현대자동차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신입사원 공채에서 해외 MBA 출신 지원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 MBA 출신이라고 해서 취업시 가산점을 주지도 않는다.
이 관계자는 “국내 MBA 출신을 해외 출신에 비해 불리하게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들이 실무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일선 대학에서도 앞으로 자신의 학교 MBA 출신들이 일선 기업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MBA 과정을 개설한 대학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MBA 졸업 후 연봉이나 대우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졸업 후 기업에서 최대한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MBA 출신의 장래가 불투명한 실정이지만 국내에서 MBA 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의 관계자들은 국내 MBA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외국에서 MBA를 이수한 사람들은 국내의 기업 환경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양대 경영학과 이웅희 교수는 “외국 MBA 출신들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사례에는 능통하지만 정작 한국 기업의 사정은 잘 모른다”며 “국내 MBA는 국내의 각종 법규와 규제 등 한국 경제의 상황을 숙지한 후 한국 기업에 맞는 내용을 교육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 삼성, LG, 포스코, NHN 등 국내 주요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 등의 인사 담당 임원 2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이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처음부터 교육 과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은 각종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기업 환경에 맞는 맞춤인재를 양성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현직 CEO 등을 겸임교수로 초빙함으로써 재학생이 현장 감각을 익히는 것은 물론 미리부터 인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이화여대는 MBA 출범식과 함께 약 50명의 2006학년도 1학기 겸임교수 명단을 발표했다. 이 중엔 구학서 신세계 사장,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 남중수 KT 사장 등 쟁쟁한 재계 대표급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정문종 교수는 “대부분은 정규수업을 이끌어가기보다 특강을 하는 형태가 될 것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겸임교수를 확보해 학생들의 인맥을 넓혀줄 것”이라고 말했다.
MBA 관련 컨설팅 회사인 JC MBA의 김형기 상무는 “미국 MBA가 강점을 가지는 것은 현장감 있는 사례연구(case study)때문”이라며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수를 중심으로 국내 현실에 맞는 사례를 발굴해 간다면 장기적으로 국내 MBA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