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ultants Blogger

러시아서 서울보다 넓은 땅에 감자 심는 한국인 본문

Russia & CIS Talk/Russia Talking

러시아서 서울보다 넓은 땅에 감자 심는 한국인

Jeffrey.C 2016. 10. 29. 21:12

러시아서 서울보다 넓은 땅에 감자 심는 한국인


양파는 추위에 약한 대표적 작물로 러시아는 양파 수입 세계 1위국이다. 하지만 내년 봄 한겨울을 난 양파가 수확된다.
국내서 개발한 강내한성 양파를 들고 러시아 땅에 깃발을 꽂은 한국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파와 씨감자의
러시아 독점권을 확보하고 타타르스탄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김재희(47) 야드란코리아 의장을 만나봤다.


러시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에서는 이 시기에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10㏊(33만평)의 땅에서 양파 싹이 올라오기 시작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양파는 추위에 약한 대표적 작물이다. 러시아에서는 월동 재배가 안 된다. 보통 5월에 심어 가을에 수확한다. 재배 기간도 길다. 씨양파를 얻고 수확을 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린다. 크기가 작고 무른 데다 맛도 좋지 않지만 가격은 비싸다.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양파 수입 세계 1위국이다. 

지난 8월 중순부터 타타르스탄공화국에 심기 시작한 양파는 한겨울을 나고 내년 봄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주먹만 한 크기에 단단하고 맛있다. 무엇보다 영하 45도 이하에서도 살아남는다. 

한국 종자생산 기업인 씨드온에서 개발한 강내한성 양파를 들고 러시아 땅에 깃발을 꽂은 한국인이 있다. 이번에 심은 110㏊는 시험재배에 불과하다. 올겨울을 성공적으로 나고 첫 수확을 하면 내년부터 재배면적을 점차 넓혀 2019년 5000㏊까지 늘릴 계획이다.

양파뿐이 아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씨감자로 감자가 주식인 러시아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9월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이를 위한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KOTRA가 마련한 2016 수출첫걸음 종합대전에서 국내 농업법인인 마고플랜츠(대표 민준기)와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의 합작회사인 ‘마고플랜츠 보스토크’와의 설립 계약 체결이 이뤄졌다. 

마고플랜츠는 씨감자 30만t을 공급한다. 씨감자 30만t은 식용감자 30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양으로, 경작면적으로 치면 8만㏊에 달한다. 서울 면적이 6만500㏊이고, 우리나라 연간 감자 생산량이 70만t이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희 야드란코리아 의장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수출첫걸음 종합대전 행사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양파와 씨감자의 러시아 독점권을 확보하고 타타르스탄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사람은 김재희(47) 야드란코리아 의장이다. 

마고플랜츠 보스토크는 야드란 코리아에 속해 있다. 김 의장은 양파·씨감자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한국과 타타르스탄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루스탐 민니하노프 타타르스탄공화국 대통령의 방한 뒤에도 김 의장이 있었다. 김 의장과 타타르스탄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가 의형제를 맺은 동생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타타르스탄 국회의원이면서 대기업인 야드란그룹의 살리코프 이레크(38) 회장이 그의 동생이다. 김 의장과 이레크 회장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끈끈하다. 

타타르스탄이 형제의 나라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한 편의 장편소설이다. 그 이야기를 축약하면 이렇다.


나는 농부의 아들


그는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농부의 아들이다.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지만 운동권에 깊이 발을 디딘 탓에 대학 2학년 때 제적을 당했다. 시위전력 때문에 취업도 안 되고, 사업할 돈도 없고, 농부가 되겠다고 고향에 내려갔지만 좁은 땅은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직업군을 조사해 보니 4000개가 되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나씩 지워가다 보니 마지막에 어패류가 남았다. 서울로 올라와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을 갔다. 시장은 펄펄 살아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27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건 맨주먹과 패기뿐이었다. 수산물시장의 진입장벽은 컸다. 도매거래를 장악한 중매인들이 절대권력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운동권 선배들 찾아다니면서 중매인의 도매거래를 금지한 농안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중매인과 소매상인이 맞서 시장은 전쟁터가 됐다. 화염병 던지며 목숨 걸고 지킨 덕분에 정상적인 거래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3년 만에 그는 어패류시장의 신화가 됐다. 그동안의 노력은 ‘피눈물 나는 고생’으로 압축하고 넘어가자. 신세계, 수협, 현대백화점 등에 납품을 하면서 중견기업 매출을 이뤘다.

한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또 한 번 그의 삶을 바꿨다. 같이 술을 마시던 선배의 말이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부모 직업란에 ‘노가다’라고 적었더니 아이들이 ‘노가다 새끼’라고 놀렸대. 아들이 학교를 안 가.” 당시 그는 이름 대신 ‘바지락’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 순간 머리에 전기가 흐르는 충격을 받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직업란에 뭐라고 쓸까. 어패류 사업을 접기로 했다.

러시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알메티예프스크시에 있는 양파밭.

맞물려 성공 그래프도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내달리던 때였다. 벤처 열풍이 불면서 IT기업에 투자한 수백억원을 날렸다. 430억원을 주고 산 원양어선 2척은 외국인 선장들이 잡은 고기를 전부 팔아먹고 튀는 바람에 건질 것이 없었다. 억류된 배를 찾기 위해서는 배보다 배꼽이 컸다. 

깨끗이 손 털고 남은 비상자금 챙겨 해외에 눈을 돌린 것이 2003년이었다. 한 가지 남은 것은 러시아 바이칼호수의 생수 사업이었다. 원양어선 사고 처리를 위해 러시아를 오가다 체첸 친구를 사귀게 됐다. 그 친구와 바이칼호수에 놀러갔다 시작된 일이었다. 바이칼호수의 물을 끌어 생수를 만들 수 있는 인허가를 받고 공장을 세우고 세계적인 물기관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시베리아의 ‘봉이 김선달’을 꿈꿨지만 투자를 받은 것이 문제가 생겨 법적 공방이 이어지는 바람에 사업은 중단됐다. 명의와 공장은 그대로 둔 채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태다.


사람이 재산이다


해외를 오가며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10여년 만에 그가 인생의 승부처로 주목한 곳은 ‘러시아’였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의 땅이었다. 놀고 있는 땅이 어마어마했다. 토양도 비옥했다. 갈아엎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러시아 연방 정부는 2015년 농업예산을 1위로 책정했다. 그동안 1위 자리를 차지했던 가스, 석유를 밀어낸 것이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분쟁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럽 등 경제제재 국가들에 대한 반격으로 농산물 수입을 금지한 때문이다. 

그는 재배가 어려운 양파와 주식인 감자를 주목했다. 러시아 연방 전체 감자 생산량은 연 3200만t에 달한다. 러시아 연방 어디를 가도 감자밭이 펼쳐진다. 1인당 연 120~130㎏을 소비한다. 중국이 60㎏, 우리나라는 13~14㎏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10배를 먹는 셈이다. 

그는 양파, 씨감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농업회사를 꿈꾸고 있다. 그동안 쌓아놓은 엄청난 자산도 있다. 바로 ‘사람’이다. 그에게는 타타르스탄 이레크 회장을 비롯해 7명의 의형제가 있다.

이레크 회장과의 인연은 2001년에 시작됐다. 바이칼 생수 사업 때문에 러시아를 오가던 때였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한 식당에 갔을 때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이레크와 유난히 자주 눈이 부딪쳤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가는데 이레크도 마침 계산을 하기 위해 나왔다. 

이레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라는 답에 이레크는 반색을 하며 “아이 러브 코리아”를 외치더란다. 당시 삼성·엘지 전자제품이 러시아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던 때였다. 명함을 줬더니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의형제를 맺은 살리코프 이레크 회장과 김재희 의장.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레크는 한국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관심도 많았다. 2004년 그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틈만 나면 한국에 왔다.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고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두 사람은 우정을 쌓았다. 첫 만남 후 5년여가 지났을 때였다. 이레크가 연락을 해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마피아 돈을 빌려 썼는데 아버지한테 말하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거액이었지만 두말없이 송금을 해줬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빌려줬겠지만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아무 연락이 없다가 불쑥 한국에 온 이레크는 자신의 배경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의형제를 맺자고 하더란다. 말하자면 ‘간’을 본 셈이다. 이레크의 아버지가 국회의장이고 유전을 소유한 재벌이라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보드카에 서로의 피를 나눠 마시고 둘은 형제가 됐다. 현재 두 사람은 사업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 러브 코리아”


지난 9월 30일 씨감자 협약 체결식에는 이레크 회장과 타타르스탄공화국 알메티예프스크시의 라트미르 마브리프 시장이 참가했다. 씨감자 사업에는 야드란그룹도 지분을 참여하고 있다. 

알메티예프스크시는 양파와 씨감자의 전진기지다. 김 의장은 양파 재배지로 이곳 110㏊를 매입했다. 씨감자 부지는 임대이다. 땅 임대뿐만 아니라 판로까지 타타르스탄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고 있다. 체결식이 끝난 후 주간조선은 이레크 회장과 마브리프(36) 시장을 인터뷰했다.

마브리프 시장의 한국 방문은 지난 6월 민니하노프 대통령 방한단으로 온 것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마브리프 시장이 자신의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7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한국 제품 너무 사랑합니다. 스마트폰은 무조건 삼성입니다.”

마브리프 시장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넓은 땅에 양파 싹이 올라오고 있는 사진이었다. 마브리프 시장은 의욕이 넘쳤다. “씨감자를 계기로 우리 시를 러시아 감자의 센터로 만들 겁니다. 땅, 도로, 물, 얼마든지 지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정학적 위치도 유리합니다. 러시아 전역은 물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주변국과 유럽 시장 접근도 용이합니다. 한국과 타타르스탄이 윈윈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습니다.” 마브리프 시장은 “타타르스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은 누구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말을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라트미르 마브리프 알메티예프스크 시장.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레크가 회장으로 있는 야드란그룹은 오일, 석유화학, 금융, 건설 등 계열사가 68개이다. 야드란그룹의 러시아 국내 매출은 16조원, 해외까지 합하면 30조원이다. 야드란그룹은 실내 테마파크 등 한국과의 사업을 다각도로 추진 중이다. 

이레크 회장은 “우리는 땅과 자원이 있고 한국은 기술이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과 조만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레크 회장에게 한국을 왜 좋아하는지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사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항상 이익만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을 떠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가지 단점은 일을 하기 전 협의 과정이 너무 복잡합니다. 장점일 수도 있지만 결정까지 절차가 많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레크 회장은 유머가 넘쳤다. 10살이나 많은 김 의장을 보고 “사실은 내가 형인데 김이 약을 잘못 먹어 늙어 보인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의장과의 인연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사업 파트너로 시작을 한 것이 아닙니다. 5년 동안 우정을 쌓으면서 지켜보다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형제애가 바탕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끊기지 않는 관계입니다. 사람을 사귈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제가 형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자네, 해봤어?”


그동안 김 의장은 한국 기업과 타타르스탄 사이에서 숨은 역할을 많이 했다. 민니하노프 대통령의 방한 이후 양국 간 논의되고 있는 사업이 많다. 그 사이에서 그의 역할이 크다. 

그가 한국 기업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로 진출할 때 모스크바보다 변방에 베이스캠프를 갖추는 것이 유리하다. 모스크바는 경쟁도 치열하고 경쟁자도 세다. 비용,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러시아 시장 전체를 보지 말고 자기 제품하고 가장 맞는 지역을 찾아라. 그곳에 가서 인맥을 쌓고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자네, 해봤어?”

정주영을 가장 존경한다는 김 의장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직원들에게, 자신에게 그 말을 수없이 던졌다. 그 도전이 지금의 그를 키운 셈이다. 그는 “정주영 자서전을 수없이 읽었지만 남은 말은 딱 그 한마디”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 아폴로 보스토크, 마고플랜츠 보스토크 등 4개 회사를 가지고 있다. 2개는 석유화학 제품과 밸브, 산업기자재 사업이고 2개는 양파·씨감자 사업을 위한 농업회사이다. 그는 앞으로 다른 사업보다 농업에 전력할 생각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10년 내 대한민국 면적만큼 해외에 농사를 짓는 것이다.


(Source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17/2016101701995.html )